2017년은 종교 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세계적으로 힘을 잃어가는 현대 교회가 16세기의 종교 개혁의 불길을 받아 다시 힘차게 일어나자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종교 개혁의 정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과거의 교훈으로부터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역사의 교훈은 항상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으나, 우리가 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진작 이런 움직임이 있었으면 훨씬 바람직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쪼록 다양한 행사를 통해 얻어낸 결과를 교회가 겸허하게 수용하고 곧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먼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종교 개혁의 원리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적용하면, 반드시 이 시대의 교회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할 것이란 성급한 결론은 피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아 각성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만, 마치 올해 안에 무엇인가 대단한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처럼 흥분되어 달려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기대와 실망, 그리고 새로운 기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1907년, 한국 교회는 ‘평양대부흥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영적 황무지인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20여년 후에 일어난 영적 각성운동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2007년, 한국 교회의 상황은 예상 밖으로 실망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세계 교회가 놀랄 정도로 괄목할만한 수적 성장이 중단되었고, 교회는 영적인 영향력마저 잃어버린 채 사회로부터 지속적인 공격과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를 통해 반드시 무엇인가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된다는 강박감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가장 관심을 쏟았던 것은, 지난 운동을 재현하는 일이었습니다. 역사적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결과로 얻은 부흥 운동의 본질적 원리를 교회에 적용하자는 것이지요.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2007년으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간 한국 교회는 눈에 띄는 수적 감소와 영적 침체의 늪으로 더욱 깊게 빠져 들었습니다. 부흥 운동이 재현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역사를 재현하려는 의지가 약하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 부흥 운동의 재현을 기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정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아 관심을 지녀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로, 누가 부흥 운동 또는 개혁 운동을 주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흥 운동은 성도들의 신앙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산물이었는가?” 이 질문이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리를 잘 이해하고 바로 적용하면 개혁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한 것이라는 분명한 답을 지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흥 운동과 개혁 운동의 생명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진정한 회개에 있다는 것입니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였을 때, 교회는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회개하며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허한 간헐적 외침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영적 변화의 가능성은 진정한 마음의 회개로 부터 출발합니다. 죄를 슬퍼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는 마음이 부흥과 개혁의 시작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주도해 나가시지만, 성도들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그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의미 있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 속에 일어난 일을 통해 영적 교훈을 받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어떤 일을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한 기록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게 됩니다. 성경과 교회 역사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주관하시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불신앙의 태도가 과연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이해함으로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16세기에 종교 개혁이 필요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자신의 모습과 자리를 지키지 못하였다는 반증입니다. 그들이 짙은 어둠에 잠긴 중세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안목은, 결국 매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교회가 지닌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나 진리의 체계를 세우는 일은, 성경이 지시하고 가르치는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문제로만 보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를 바라보시며 아파하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지한 반성의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가 역사의 목적을 설정하시고 모든 과정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은, 중세의 암흑기를 마감하는 시기에 성경에 입각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그 운동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한 부분에 속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중심적인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에 개입하시고 주의 백성들에게 살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16세기와 21세기의 상황은 분명 다릅니다. 교회가 지닌 표면적인 문제도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회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주체는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의미 있는 역사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그가 지혜와 능력으로 이끄시는 구원 역사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우리 성도들을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