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담임목사님 칼럼

기계적 신앙-점검이 필요합니다.

축소지향’

아주 오래전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란 책을 읽은 적 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 이어령교수의 글 입니다. 먼저 일본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대단히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중에 한글판이 나왔 습니다. 일본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초월하여, 앞서가 는 선진국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 게 되었습니다.

국어학자인 이어령 교수의 문체는 참신하고 명쾌합 니다. 대단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의 역사와 사상과, 문화를 총망라한 입 증자료에 근거한 글입니다. ‘작은 것이 좋다’라는 분명 한 개념으로 이 모든 것들을 정리했고, ‘축소지향’은 성 공의 길이라는 공식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작아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간편한 것을 선호 합니다.

‘속도지향’

‘축소지향’을 추구하던 사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 습니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우리 사회에 급격한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공중전화를 기억하십니까? 지금은 길 거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마차 가 교통수단이었던 시절이 ‘까마득한 과거’로 사라진 것과 유사합니다. 지금은 전화를 손에 들고 다닙니다.

그뿐입니까? 우리 손에 있는 스마트폰은 소형 컴퓨터 입니다.

분명 스마트폰은 ‘축소지향’이 만들어낸 걸작이지 만, ‘속도지향’이라는 또 다른 이 시대의 문화를 반영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속도가 모든 것입니다. 빨라야 합니다. 신학교 시절 거금을 투자해서 책상에 놓고 사 용하는 컴퓨터를 구입했습니다. 10년 정도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불과 2년 정도도 되지 않아 새 컴퓨터를 구입해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 다. 속도가 빠른 것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공부하는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사용할 수가 없었기 때 문입니다.이런식으로할수없이출시된빠른컴퓨 터로 교체한 횟수만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혹시 이글을읽는분들가운데스마트폰,컴퓨터, 컴퓨터의 속도… 등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들이 계 시다면 너무 죄송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전에 는 세상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노력을하지않아도세상돌아가는것을알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속도지향’의 사회는,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 처져있는 사람들을 자연스 럽게 구분시키고 있습니다. 남들과 동일한 삶의 질을 누리려면, 열심히 따라잡아야 할 것이 많아진 사회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지불되는 핸드폰 전화비가 엄청 납니다. 그 비싼 스마트폰도 자주 바꿔야 합니다.

기형적 ‘인간관계’

이전에1분걸리던것을불과몇초에해치우는시대 가 되었습니다.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런 속도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분명한 것은, 스 마트폰의 출현과 함께 공중전화처럼 집에서 사용하던 전화도 무용지물로 전락되어가고 있습니다. 전화보다 는 이메일이나 문자, 또는 가톡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패턴이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상대를 찾아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면서 대화를 나눴습 니다. 우체국의 기능이 발달되면서, 자필로 쓴 편지를 통해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와 서신왕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정보를 교환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것 이지요. 군복무중인 자녀 또는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자 녀에게 눈물로 써서 보낸 편지, 엄청난 양의 편지지를 찢으며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핑크색 편지 를 생각해 봅니다. 이미 형성된 인간관계를 더욱 가깝고 깊게 해주는 소중한 방편이었습니다.

‘속도지향’이 우리의 삶을 훨씬 편안하게 해 주고 있 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없지 않습니 다.단지이런사회적변화의산물이무엇인지잠시고 민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눈, 목소리, 자필로 상대와 소통하지 않습니 다. 찾아갔는데 집에 없거나, 편지를 보냈는데 다른 주 소로 전달되어 분실되었거나, 전화를 했는데 ‘통화중’이 어서 연락하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이 메일이나 문자, 또는 카카오톡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선 호합니다. 인간관계에 커다란 기형적 변혁이 온 것입니 다. 기계가 그 관계의 중심에 자리한 것입니다.

 

기형적 ‘기계화 신앙’

기계화’가 대세입니다. 기계 앞에서 히쭉히쭉 웃기 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합니다. 혹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소통하는 것이 편안하게 생각 하십니까?기계뒤에나의감정을숨길수있다는것 이 당연스럽게 여겨지십니까? ‘기계화’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기계화를 통해 우리는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그러 나 이런 사회적 현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상대와 원만 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묶어주는 ‘끈끈한 그 무엇’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은 ‘정’ 또는 ‘정감’입니다. 상대를 향한 호의적인 감정을 말하지요. 기계는 기계입니다. 정보를 전달하 는 것에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겠지만, 상대에게 자신 의 감정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기계의 한계는 분명합 니다.

이런상황에서정작우려가되는것이있습니다.우 리의 신앙이 ‘기계화’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출발하고 유지됩니 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항상 함께 하시 는 하나님, 나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하나님, 그리고 언제든지그의이름을부르며나아갈수있는하나님 이십니다. 신앙은 절대로 감정 일변도로 치우칠 수 없 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배제된 신앙도 없습니다.

‘기계적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의 일대일 관계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016년 1월입니다. 항상 가까이 계시는 하 나님께, 진정한 마음을 담아 드리는 사랑의 고백으로 채워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