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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능력과 신앙

독서능력
수년 전 일본을 방문하여 전철을 탈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심코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모든 승객이 차분하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 전철을 탔을 때 받았던 인상과 너무도 대조적이었기에,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을 자주 다녀오신 분들은 동감하실 것입니다. 요즘 전철 승객 대부분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채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뭔가를 시청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이 전에는 대부분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 같은 모습으로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감정이 상해있고 화가 난 모습 같았습니다. 심지어 말을 걸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나중에서야 일본인들에게 전철을 타는 시간과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독서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일본을 다녀온 일이 없어 제가 목격한 일은 없지만, 아직도 그 습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정보가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인의 독서 습관은 역사적으로 무척 오래된 일입니다. 일본의 근대화를 가져온 명치유신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19세기 중엽부터 중국의 중화론적 세계관에 맞서는 새로운 체제를 추구한 결과, 왕정 복고적 개혁과 함께 서양의 문물과 시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는 정책을 수용하였습니다. 이때 일본정부는 국민들을 일깨워 과학적인 사고를 지향하고 서구문명에 대한 정보를 속히 습득하도록 하기 위하여 독서능력을 향상하는데 힘을 쏟은 것입니다.

독서능력과 신앙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아직 1%도 되지 않습니다. 16세기 중엽 구교 선교사가 일본에서 복음을 전한 역사가 있지만, 개신교 선교는 185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선교보다 앞선 것이지요. 그런데 초기 개신교의 선교에 대한 일본과 한국교회의 반응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식층이 복음을 받아드려 확산되었습니다. 자연히 독서능력에 뛰어난 일본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는 책자들을 찾게 되었고, 그들을 위하여 외국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사역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저명한 신학자들의 글이 빠른 시간에 번역되었기에, 일본어 구사가 가능한 한국 교회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큰 유익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로서 일본 교회는 성경의 깊은 내용을 이해하는 신앙인들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스스로 읽고 깨닫는 것보다, 주로 예배와 성경공부 시간에 귀로 전달받아 믿는 형식의 신앙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설교자로부터 말씀을 받은 후 뜨겁게 기도하는 신앙이 한국교회의 표준이 된 것입니다.

이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일본과 한국 교회를 비교할 때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독서능력이 뛰어난 지식층을 중심으로 신앙이 급속히 전달되었어도, 향후 자유주의신학자들의 서적이 범람하면서 교회가 급속도로 힘을 잃게 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과 전혀 다른 것이 그들에게 소개되었기 때문이죠. 자신이 직접 글을 읽고 깨달아 가는 신앙의 가치는 분명 대단합니다. 사실 평생 남이 떠나 먹여주는 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인은 스스로 밥을 차려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과 신앙
우리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고 먹어야 합니다. 먹거리라 추측하고 무조건 입에 댄다면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신앙은 절대로 버리거나 변형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으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지역 교회(가시적교회, 교인이 되어 출석하는 교회)를 중심하는 신앙생활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 부분은 전문성과 정통성이 요구되는 부분이지요.

유명한 일본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는 무교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성경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근거’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기를 거부하였다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각 성도들에게 성경을 읽기를 권하면서도, 교회를 통해서 배우면서 신앙이 자란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면, 그 결과 ‘내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초대교회에 활동했던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과 16세기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이 성도들을 향해 중요한 말을 외쳤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성도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교회를 통해 신앙이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성경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인지 충실하게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신앙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많이 읽고, 외우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성도로 성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말씀선포를 통하여 성경 말씀이 지닌 의미를 차분하게 배워가야 합니다.

매일 양식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음식을 전혀 섭취하지 않거나, 오랫동안 굶다가 가끔 섭취하면 절대로 건강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정 분량의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하루에 7분’ 이상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많이 계십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답을 찾아 교역자들에게 제출하여 점검을 받는 분들의 수가 엄청 많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분들인지 모릅니다.

어제로 모세오경을 모두 마쳤습니다. 창세기를 시작할 때, 언제 끝날까 했는데 시간이 빨리 지나갔습니다. 모세오경은 광야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모세의 죽음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광야를 걸어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며, 묵묵히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시편 1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