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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냄새”

“사람 사는 냄새”

조진모 목사

 

남대문 시장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도착 일부터 출발 일까지 10일에 불과하였습니다. 신학교와 교회에서의 강의와 채플, 그리고 집회를 인도하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며칠은 긴장을 풀고 지낼 수 있었지만, 계속 시간에 쫒기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남대문시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방문한 곳입니다. 남대문 시장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어려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던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몇 푼이라도 싸게 파는 곳을 찾아다니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어린 저는, 다리가 아프다며 찡얼대기도 했죠.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도 거의 예외 없이 이리 저리 둘러보는 것이 제게는 큰 보람입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먹자골목’을 찾아가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지만, 바쁠 때에는 길거리에 서서 떡볶기와 오뎅을 먹는 기쁨은 결코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항상 남대문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이 밟힐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매우 한산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잠시 머문 후, 약속이 잡혀져 있어 바로 옆에 자리 잡은 S백화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우아! 왜 그리 손님들이 많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남대문 시장에 올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간 것이 아니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아! 한 가지 더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진열된 물건에 붙어있는 가격이 엄청 세다는 것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원화를 달러로 계산하게 되는데, 즉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인지 아니면 백화점 물건이 그런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저는 말로 들어왔던 한국 사회의 ‘빈부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 사회에서 두 기둥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분석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중산층’과 ‘상승층’입니다.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형편입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탈피할 수 있는 소망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매우 마음이 아픕니다.

남대문 시장은 찾는 이유가 다양하겠지요. 저와 같이 외국에 살다가 향수를 달래기 위해 그곳을 배회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원래 절약하는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실용적인 선택을 하여 그 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백화점에 진열된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주머니 사정 때문에 할 수 없이 남대문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짝퉁 또는 버금가는 물건으로 대리만족을 삼아야겠지요. 아마도, 저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계속해서 남대문 시장을 찾을 것 같습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향수 때문입니다. 그냥 제게는 계속해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제 시장
신학교 동기 동창인 이목사님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몇 일전 남부 지방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초강력 태풍 치바가 상륙하기 직전이라,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방문하고 싶은 곳이 생겨 부탁하여 다녀왔습니다. 세계의 최대 규모로 인정을 받은 L백화점과 얼마 전 영화로 널리 알려진 국제시장이었습니다.

먼저 백화점을 방문했습니다. 세계 최대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건물 앞 드넓은 주차장에 수 십대의 관광버스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부분 중국 관광객들인데, 관광 일정에 속해있지만 비가 오니 더 많은 수가 이곳을 찾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진풍경을 목격했습니다. 화장품을 파는 층 입구에 경비가 서서, 아예 내국인을 들여보내질 않았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명찰을 찬 채 바쁜 걸음으로 물건을 챙기는 관광객들로 북적되고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음식점들이 있는 꼭대기 층에 올라갔습니다. 각 업소마다 줄이 엄청 길었습니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식 뷔페집은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문화 체험을 한 셈입니다.

국제 시장을 방문하였습니다. 6.25 동란 직후, 황해도에서 할머니와 4남 3녀가 군함을 타고 군산으로 일단 피난 온 후, 부산으로 이동하여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생계를 유지하셨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국제시장’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 그 느낌을 얻을 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꼭 그곳을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동행하신 이목사님은 부산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신 분이시기에, 가는 길에 차에서 국제시장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마치 저희를 환영이나 하듯 비가 잠시 멈췄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서점 골목을 지난 후 시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옛날, 피난 시절의 모습을 떠오르면서 상가 골목을 한참 다녔습니다. 이때 받은 인상은, 남대문 시장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규모는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국제 시장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꽃분이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추억을 담아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 둘러본 후 시장을 나섰습니다. 남대문 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갖는 아주 야릇한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더 머물고 싶은데 떠나야 하는 아쉬운 마음보다 더욱 깊은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 사는 냄새로 내가 풍족하게 채워졌다는 매우 뿌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국제 시장 안을 걸으면서, 남대문 시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고향을 뒤로 하고 자유를 찾아 이남으로 내려와 주린 배를 움켜지고 삯바느질을 하시던 할머니의 인자하신 모습과 창피를 무릅쓰고 눈깔사탕을 팔던 어린 고모와 삼촌 남매의 모습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제 시장’ 영화를 관람하면서, 마음이 짠한 장면에서 남자답지 못하게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이번 국제 시장의 골목을 거닐며, 오래전 그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니시던 사랑하는 분들의 사람 냄새를 마음에 풍족하게 담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잠시 눈을 감고 짧은 시간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제 안에 무척 진하게 배어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