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담임목사님 칼럼, 웹매거진

생각하는 신앙인

특별한 만남

저는 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아주 특별한 만남을 경험했습니다. 그 분은 프랑스 태생으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블레즈 파스칼이란 분입니다. 1623년에 태어나고 39살에 죽음을 맞았으니, 17세에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직접 만난 것이 아닙니다. 파스칼은 매우 유명한 인물이기에, 그 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의 걸작 ‘팡세’라는 책을 통해 이뤄진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그 분의 깊은 것을 드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나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IVF 라는 기독학생반에 가입을 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제 신앙이 돈독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입학과 함께 어떻게 하면 열심히 놀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을 때, 교회 선배들의 강한 권유를 피할 수 없어서 반 강압적으로 선택한 경우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모르고,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신앙의 울타리를 혐오하면서 사춘기를 지냈습니다. 한번은 겪어야하는 신앙적인 갈등이고, 그런 경험이 있어야 좀 더 탄탄한 신앙의 기초를 지닐 수 있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지나가는 동안 겪어야 하는 영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속 한 구석에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남다른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1학년 첫 학기를 마치고 거행된 IVF 여름 수련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라는 주제로, 약 4백명의 회원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당시 젊은 신앙인들이 많이 따랐던 강사 송인규간사의 원색적인 메시지를 통해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복음과 고난’은 항상 동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저는 ‘복음’은 수용하지만 ‘고난’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태도를 고집하였던 어리석은 신앙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름방학 이후, 신앙에 대하여 눈이 뜨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복음과 고난’의 관계는 조금 근본적인 문제였다면, 다른 신앙의 영역에서도 제 나름대로 거부하거나 수용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열매

제게 파스칼과의 만남이 특별하였던 것은, 그 당시 제 고민거리를 ‘팡세’라는 책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만 골라서 들으려하던 저의 근본적인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생각하는 시간’이 없이, 멍청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1642년에 세계 최초로 기계식 계산기를 만들었고, 공용버스제도를 최초로 창안하기도 했습니다. 16살에 수학 논문을 발표한 수학자며 물리학자입니다. 매사에 정열을 가지고 몰두하였던 그였지만, 성경적인 신앙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쏟았습니다. 요즘 다시 ‘팡세’를 읽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신앙인’이었던 그가 던지는 말에 근거해서, 잠시 제 신앙에 대해 생각하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팡세’에 담겨져 있는 주옥같은 글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생각이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고집피우거나 거기에 빠지게 된다.” “믿음은 증명과는 다르다. 증명은 인간적인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을 느끼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신앙이란 그런 것이다.” “참된 종교는 인간이 위대하다는 사실과 함께 인간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 얼마나 공허하고 오물로 가득 찬 것인가!” “인간의 예측이란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 “의심해야 할 때 의심하고, 확신해야 할 때 확신하며, 복종해야 할 때 복종할 줄 알아야 한다.” “참된 기독교인은 드물다. 믿는 자는 많다. 그러나 미신에 의해서다. 믿지 않는 자도 많다. 그러나 방종에 의해서다.” “모든 사람이 수담만 생각하고 목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한탄할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성보다 의지를 다스리기를 원하신다.”

파스칼은 항상 생각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팡세’는 그가 지녔던 깊은 생각의 열매였습니다. 그는 매우 허약한 체질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여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후에는 과도한 고행과 금욕생활로 인해 결국 병을 얻어 39살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시절을 지나면서도 끝까지 성경 말씀의 진리에 대한 묵상하며 항상 하나님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생각의 중심

파스칼은 사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살았습니다. 30년 전쟁 이후 유럽대륙의 정치상황은 혼란을 거듭하였고, 여러 사건들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거부하고 인간의 이성에 소망을 거는 새로운 사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회의주의가 기독교적 바탕으로 이루어진 유럽 사회에 상륙하여 큰 변화를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파스칼도 한 시대의 아들이었습니다. 몽테뉴와 같은 회의주의자들의 서적을 읽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그는 당시에 최대의 사상가였던 데카르트와 교제를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합리주의자였습니다. 이 분이 남긴 유명한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파스칼이 처한 환경만을 살펴보면, 당연히 그도 기독교 신앙을 강하게 거부하고 인간의 이성을 우상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역행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 사람들처럼, ‘생각의 중요성’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고 인간의 이성이란 틀 안에서 이뤄지는, ‘사람 중심의 생각’을 거부하였습니다. 파스칼에게는 성경의 진리를 최고의 권위로 두었습니다. 즉, ‘생각하는 신앙인’은 반드시 성경을 그 생각에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에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인간적인 능력에 집중하게 합니다. 신앙인의 생각은,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게 합니다. 생각이 없는 신앙인의 삶은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