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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미래

전통과 미래

두 가지 전통
1950년대에 시카고대학의 인류학 교수였던 밀턴 싱어(Milton Singer)는 전통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위대한 전통과 사소한 전통입니다. 위대한 전통이란, 대중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지닌 유교정신, 유대인들의 탈무드, 초기 미국의 청교도신앙과 같은 역사적 유산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사소한 전통이란, 대중적인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는 특정 지역이나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각 지역마다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매우 독특한 언어와 노래, 음식과 풍습이 있습니다. 요즘은 정보화 시대를 맞아 지구촌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에 놀라게 됩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소한 문화라 하여도, 제한된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 전통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나아가서 싱어는 위대한 전통과 사소한 전통으로 구분한 뒤, 후대가 전통의 유산과 역사에 대해 논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 전통을 동시에 다룰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싸이라는 한국 남자 가수가 ‘강남 스타일’이란 노래로 글로벌 스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강남 스타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노랫말이 말해주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강남’이라 하면 이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굳이 서울을 전통적인 지역인 ‘강북’과 신생 도시인 ‘강남’으로 나누자면, 일반적으로 ‘강남’은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강남에 사는 학부모들은 매우 거센 치마 바람으로 자녀교육에 올인 하고, 이곳 주민들은 갖은 해외여행과 고급스런 레저 생활을 즐기며 산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사실 강남이란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의 여유롭고 풍요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강남을 관통하는 대로는 장대한 빌딩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번화한 상가들의 모습에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뒷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강남이나 강북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급 아파트촌과 재래시장이 맞대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으리으리한 대 저택과 누가 봐도 재개발을 필요로 하는 주택들을 동시에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돈을 펑펑 물 쓰듯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며 항상 쫒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강남’의 문화는 다양한 것들로 이루어진 복합체입니다. 모든 전통이 그렇습니다.

50년 – 반세기
우리 교회는 올해 9월로 50살을 맞습니다. 한 세기는 100년이니, 반세기도 절대로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1년을 365일로 기준하면, 무려 18,250일 또는 438,000 시간이나 됩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의 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영광의 찬송을 올려드릴 뿐입니다. 1968년 필라델피아에서 교회가 시작될 때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분들과 타주로 이사를 가신 분들도 계시지만, 현재에도 교회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함께 주님을 섬기는 계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후에도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마음과 뜻을 다해 동역의 길을 걸어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 모든 분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역사는 초대교회 이후 지난 2000년이란 세월 동안 흘러왔습니다. 각 시대마다 다양했던 교회의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교회가 처했던 문화와 상황이 달랐어도, 해 아래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온전하지 않은 죄인들이 모인 지상 교회가 경험하는 어려움과 기쁨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반세기 전에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엄청 많은 일들을 경험하여 왔습니다.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얼마나 다양한 일들을 공동체 안에서 벌어졌는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는 것은, 그에게 지난 200년이 넘도록 미합중국이 걸어온 역사와 전통이 자신의 것으로 주어지고 그 흐름에 합류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에 대한 나름의 평가가 있습니다. 이 땅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도 반세기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름대로의 독특한 역사와 전통이 이미 세워졌습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근거한 것이지만, 현재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라연합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져 왔을까요?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어떻게 평가해 오셨습니까? 개인의 생각과 판단도 중요하지만, ‘필라연합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려면 ‘위대한 전통’과 ‘사소한 전통’이 함께 숙고해야 합니다.

현재와 미래
지난 반세기를 지내오는 동안 우리 교회가 속해있는 이민 사회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주시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이민을 오는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입니다. 이전과 같이 교회가 이민 생활의 정착을 위한 발판 역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1세가 낳고 키운 영어권 자녀들은 다민족 교회를 선호하여 출석하고 있습니다.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한인 이민 교회 또는 우리 교회만 갑자기 경험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유럽 이민자로 구성된 교회는 물론, 우리보다 이민의 역사가 빨랐던 중국 교회와 일본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에겐 당황스럽고 놀랄 일이지만, 우리 보다 먼저 이 땅을 밟았던 모든 이민 교회가 이미 걸어간 길을 순리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역사와 전통을 왜곡시키거나 미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는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아, 우리 공동체가 반드시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의 상황과 현실이 곧 향후 후대에게 역사와 전통으로 전달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과거의 추억에 머무르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위대한 전통’과 ‘사소한 전통’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위대한 전통’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신앙적 조율을 시도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사소한 전통’을 고집을 버리고, 신앙적 도전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신앙 공동체라는 정체성 확립과 증진에 달려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 (이사야 43:18, 19) 현재 우리의 모습이 향후 역사와 전통이 될 것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함께 깊이 묵상할 성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