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준비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겨울 바람 때문에…”라는 동요는, 겨울날의 경험을 그대로 노래로 옮긴 것입니다. 겨울은 항상 추운 계절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어려서 기억되는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구분이 정확하였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자연히 ‘겨울 준비’에 바빴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김장김치를 담그는 일이지요. 선조들의 지혜로 땅에 장독을 땅에 묻어두고 김치를 저장해서, 겨울이 지나도록 조금씩 꺼내서 밥상이 마르지 않게 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얇게 찢어주시는 기다란 포기김치를 물에 말은 밥이나 누룽지를 한 가득 채운 숟가락 위에 얹어 놓아주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중요한 겨울 준비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특별한 난방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땔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는 산으로 나가 나무를 해왔지요. 손으로 꺽은 마른 가지와 도끼로 찍어놓은 장작을 잔뜩 광에 넣어 두었습니다. 아궁이를 계속 때야 방이 따뜻하였기에, 땔감 쌓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었습니다. 도시에서는 많은 양의 연탄을 광에 쌓아두는 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방 안에 연탄난로를 놓았습니다. 사실 지나고 보니,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부주의로 새어나온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았지만, 이렇다 할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가슴 조리며 겨울을 나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아프면, 동치미 국물 한 사발 쭈~욱 삼키고 잠시 땅에 엎드려 있으면 된다는 민간요법을 과신한 듯합니다.
‘겨울 준비’라는 것은, 결국 겨울이란 힘든 시간을 잘 지나가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겨울이 추웠다는 기억, 그 만큼 힘들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로 걸어 다녀야 했던 그 시절, 손가락과 발가락이 동상에 걸리는 경우도 있었지요. 거의 모든 양말에는 구멍이 나 기어서 신었고, 털신이라고 하지만 고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추위를 막지 못했고, 물려받은 외투는 색이 바래져있고 많이 얇아져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질 못했지요.
겨울 놀이
그래도 겨울은 항상 신이 나는 계절이었습니다. 겨울 방학이 유난히 길었기 때문일까요? 춥다고 집 안에서 화로를 쬐면서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금이 쑤셔서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동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놀았죠. 꽁꽁 얼은 마당을 네 군데를 살짝 파서 구멍을 만들고, 구슬을 던져 집어넣는 놀이를 했습니다. 한 줄을 그려놓고 저 멀리 중앙에 세모를 그려놓은 후, 그 안에 넣은 여러 개의 구슬을 향해 왕 구슬을 던져서 바깥으로 빼내는 놀이도 기억납니다.
따스한 해가 드는 처마 아래 모여서, 일본 강점기의 잔재인지도 모르면서“으찌, 니, 싼!” 구슬 따먹기 놀이도 했습니다. 이것 뿐 인가요? 달력이나 책 중에 두꺼운 종이로 접어 만든 딱지를 가지고 놀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게 뭐라고, 하나 더 따려고 온힘을 다해 딱지치기를 하고 어느 정도 하고 나면 항상 배가 고팠지요. 아마 운동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꽁꽁 얼은 논과 저수지에서 썰매타기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큰 형들은 자그마한 썰매위에 두 발로 서서 끝에 못이 박힌 긴 막대기를 양손에 잡고, 저희 같이 어린 사람들은 커다란 썰매에 무릎을 꿇고 작은 막대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던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겨울 놀이로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코 밑에는 누런 코가 들어갔다 나갔다 하기를 반복하면서 아예 두 줄이 선명하게 나아버렸습니다. 손과 뺨은 추위에 터서 피가 흐르기도 했지요. 어머니께서는 뜨거운 물을 대야에 받아서 손에 때를 닦아 주시며 제발 나가서 노는 시간을 줄이라고 당부하셨지만, 하루도 겨울 놀이를 빠뜨린 날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게 겨울인가?
지금은 계절적으로 분명히 겨울인데, 이전의 겨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겨울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기온이 올라간 것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전과 같이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집 안에는 히터가 잘 돌아가고 있고, 집 앞에 세워 둔 차를 타기만 하면 금방 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말, 신발, 옷 특히 외투 모두 옛날에 입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물론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남들 보다 약간 춥게 지낼 수는 있어도, 적어도 미국에서는 너무 추워서 떨면서 지내고 있다는 분을 만나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겨울이 따뜻해지니, “이게 겨울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겨울 품목을 파시는 분들은 더욱 동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따뜻한 겨울이 싫다거나, 더 추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결코 없습니다. 겨울이 따뜻하니 일단 거동이 불편하지 않아 너무 좋습니다. 작년에도 주말에 눈이 와서 무려 5번이나 주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우리 교회에 속하신 어르신들께서 잘 지내시는지 심히 우려가 되기고 하구요.
한 겨울 감사
계절의 변화는 많은 감사를 가져다줍니다. 봄의 생동감과 가을의 풍요함이 대표적인 것이지요. 사실 여름과 겨울은 어떤가요? 여름은 휴가철이고, 겨울은 온갖 중요한 명절로 채워져 있기에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나, 여름과 겨울은 그냥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계절이라고 생각됩니다.
과거와 달리 따뜻해진 겨울을 지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니 겨울 놀이의 추억이 되살아나 잠시 기쁘고 즐거웠지만, 춥고 배고팠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전쟁 세대가 아닙니다. 초근목피를 하면서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전기와 상수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던 시골구석에 살면서 경험했던 겨울의 아픔을 나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강산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삶의 환경이 많이 변했습니다. 전에는 이가 시려 시도도 못했었지만, 한 겨울에 냉장고에 넣었던 찬물을 마십니다. 매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집 안에서 용변을 해결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마트에 가면 다른 철과 별 다름없이 식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과거라는 시간에 대한 회고는, 감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