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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기도할게요!

공주야, 기도할게요!

파란색 공주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어여쁜 공주를 허락하셨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이었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당시 교회 권사님들께서 임신한 아내에게 거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모님 배를 보니 분명히 아들입니다! 축하드려요!” 저는 성별과 상관없이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고 태어나기만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 경험의 노장들께서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당연히 첫아들이 태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딸이 자기의 신생아 때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매우 곤란한 질문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왜 자기가 어려서 입은 옷과 이불이 주로 파란색인지 궁금했나 봅니다. 보통 여자아이들을 위해서 분홍색이나 하얀색을 입히는데, 왜 유독 자기만은 “남자 색깔” 이냐고 나름 정당한 이유로 꺄우뚱할때 마다, 나름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요.

공주가 태어났을 때, 저는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신학대학원 2년 차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방 하나짜리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산달이 추운 12월이라, 비닐을 사다가 창문을 모두 막았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첫 아이를 위해서 아기용 침대를 포함해서 중요한 용품을 일부를 샀습니다. 나머지는 선배 전도사님들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었습니다. 공주가 아닌 완자를 맞을 준비를 하였던 것이지요.

아내가 진통하는 동안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 있었습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은혜중에 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들의 확신에 찬 예상을 뒤엎고, 공주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미 방에 준비되어있는 파란색을 모두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즉시 퇴원을 하여 정신이 전혀 없었지만, 주머니 사정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졸지에 파란색 공주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신생아의 성장 속도가 엄청 빨라, 입던 옷을 버리게 되면서 점점 분홍색 공주로 변해갔습니다.

추억

공주는 가을 학기 학기말 고사를 치를 때에 태어났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가장 분주할 때이지요. 약 1주일간 제가 할 수 있던 것은 해산한 아내를 위해 ‘굴 미역국’을 끓여주는 일과 밤마다 공주를 목욕시켜주는 일이었습니다. 따스한 물을 받아놓은 대야를 거실 중앙에 놓고, 천천히 물로 몸을 적셔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옆에 떠놓은 물로 몸을 헹구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그때부터 약 4개월 정도 매일 밤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싫다고 울던 아이가 나중에는 즐기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때 공주는 한 손으로 안아도 될 정도로 아주 작았지요.  그저 살아있는 인형 같았습니다. 눈을 맞추고 옹알이를 시작한 뒤로, 목욕을 시키는 시간이 더욱 즐거웠습니다.

공주의 이름은 은애입니다. 은혜 은, 사랑 애… 그리고 영어로는 Christine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신앙인으로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어느 날, 목욕을 마치고 수건에 몸을 감은 채 품에 안고 있을 때, 제가 은애의 성장 과정을 책임을 진 아빠라는 사실이 부담감으로 밀려왔습니다. 이제 삶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은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어본 경험이 없이 성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아빠가 되어본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하였을 뿐입니다. 애가 애를 키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를 두고 한 말 같습니다. 나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 최선이 과연 정말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부끄러운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어려서 제가 부모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아마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특히 다른 아빠들에 비교해서 함께 보낼 수 있던 시간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계속되었던 공부와 이민 목회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히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함께 지낸 날들이 선사해준 아름다운 추억의 두께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욱 많이 두껍게 쌓여있습니다.

하얀색 공주

며칠 전 하얀색 공주와 댄스를 하였습니다. 딸이 결혼을 한 것입니다. 결혼식 피로연의 한 순서로, 하얀 드레스를 입은 딸의 손을 잡고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함께 댄스를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은애를 Princess, 공주라고 불렀습니다. 자기가 정말 공주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특히 공주가 좋아하는 분홍색 드레스가 있었는데, 그 옷을 입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저와 함께 댄스를 하곤 했습니다. 흥에 겨워 까르르 웃던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찍어두었던 비디오를 디지털로 옮겨 놓았는데, 항상 보물과 같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에, 댄스를 함께 연습하자고 했습니다. 평생 한 번 있는 일이니 잘 해보자는 의도였지요. 그러나 사정상 연습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려서는 함께 댄스를 한 기억이 있지만, 그 후로는 전혀 그런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약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얀색 공주의 손을 잡고, 처음 들어보는 재즈풍의 음악에 맞추어 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음악도 댄스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뭔가 어색했지만, 곧 편안하게 댄스를 할 수 있었습니다.

댄스 경연대회에 나와서 입상을 해야 하는 강박감이 느낄 필요도 없었고, 하객들에게 얼마나 댄스 실력이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시간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한 손에 들렸던 파란색 공주가, 어느덧 한 남자의 아내가 된 하얀색 공주로 성장한 것을 실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결혼식 주례를 많이 서 본 저는, 항상 피로연 시간에 아빠와 딸이 댄스를 하면서 어떤 말을 나눌까 궁금하였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아빠가, 제가 하얀색 공주와 건네준 말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는 아빠의 영원한 공주야. 사랑한다. 행복하길 바란다.” “공주야, 기도할게!” 언제부턴가, 제가 공주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수차례 반복한 것 같습니다. “공주야, 기도할게!” (히브리서 7장 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