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잡은 두 손
담임목사 칼럼
아들을 위한 기도
저는 어려서부터 목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특별한 소명의식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걸어가신 목회의 길을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끌어안고 살았던 것입니다. 청소년 말기에 시작된 신앙의 갈등과 방황이 대학생이 된 후에야 끝났습니다. 삶의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되면서, ‘주어진 길’ 보다 ‘나의 길’을 선택하려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던 제가 결국 무릎을 꿇었지요. 신앙의 회복과 함께 목사로서의 부르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였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마다 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동시에, 저는 부모님께서 하나님께 올린 간절한 기도를 잊을 수 없습니다. 철이 들면서, 왜 두 분께서 그리 열심을 내어 기도하셨는지 알게 되었지요. 다른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신앙인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저의 모습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저는 평생 부모님께 많은 기도의 빚을 졌습니다.
2009년 7월,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하늘나라로 불러가셨습니다. 그 분의 빈자리가 너무 컸습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월요일 마다 전화로 축복 기도를 받으며 한 주를 시작하던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는, 혼자되신 어머니 기도의 후원을 받으며 지내야 했지요. 많이 아쉬웠지만 그냥 견딜 만 했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기도
평생토록 지속된 부모님의 기도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그 분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하나님 품에 안기신 후, 어머니를 위한 기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편을 잃은 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간혹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울먹거리셨지요. 아버님께서 즐겨 드셨던 과일을 볼 때마다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마늘을 깔 때마다 옆에서 도우시던 모습이 생각나서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을 그립게 만드는 것이 어디 한 두 가지였겠습니까. 어머니는 평생 목사의 아내로 지내시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꾹 참아내는 일에 익숙하셨던 분입니다. 제게 조심스레 던지신 몇 마디를 통해, 많이 힘들어하고 계시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병을 얻으신 후, 이 전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작년 11월 초, 호흡에 문제가 있어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후 극도로 약해지셨습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으셨습니다. 식사도 조금씩 먹여드려야 했습니다. 기도의 힘을 확신하며, 성도님들을 포함하여 주위에 계신 분들께도 기도를 부탁드렸지요. 이제 갓 80이 넘으셨으니 건강을 회복시켜주시고 장수하게 해달라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더하시고 마음에 평강을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함께 드린 마지막 기도
지난 2월 3일,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의 저녁 식사를 위해 제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큰 소리로 “아멘!” 하신 후, 즐겁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오래 걸렸지만 전체의 2/3 정도를 드신 후, 배가 부르다며 만족해 하셨습니다.
마지막 식기도가 될 줄 전혀 몰랐습니다. 오후 11시에 병원을 나서기 전에 잘 주무시라고, 내일 뵙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방긋 웃으시며 인사를 받으셨지요. 병원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잠을 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였습니다. 한 남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제 신분을 확인 한 후, 어머니께서 1시 10분경에 이 세상을 떠나셨기에 알린다고 하였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급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편안하게 누워계신 것이, 마치 잠을 주무시는 듯 했습니다. 아직 몸이 따뜻하셨습니다. 긴 시간 옆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직접 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비록 제 말을 들으실 수 없지만,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평상시에 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 혼자 “아멘!”으로 기도를 마쳐야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드린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차가워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났습니다. 아버님께서 농촌 복음화가 시급하다며 영적 황무지였던 김포읍 원당리에서 교회를 개척하셨지요. 옛날식 집, 바깥 채 단칸방 세를 얻었습니다. 짧은 처마 밑에 작은 아궁이에 사용해서 방을 데우고 밥을 지으셔야 했지요. 하루는 뒷산에서 나무를 해 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지친 모습으로 땔감을 주워 오셨습니다. 겨울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기 전에 더운 물을 대야에 담아 손과 얼굴을 씻어주셨습니다. 어찌 그리하실 수 있었는지, 그냥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가만히 계산해 보니, 그 때 어머니 연세가 20세 후반이셨습니다. 희생과 사랑으로 저희를 키워주신 어머니의 두 손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이 가까운 시간,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것이 쉽기 않았습니다.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다가, 어머니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하면서 조용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엄마, 사랑해! 정말 고마웠어! 먼저 가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