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詩)
감동
제게 감동을 준 첫 시는, 김동환 선생님의 ‘산 너머 남촌에는’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넓은 벌판에서 날아다니는 호랑나비 떼와 개천 옆에서 노래하는 종달새를 직접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저는 전혀 생소했던 일을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시에 곡을 붙이는 일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지만,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작곡을 시도한 것은, 그 시로부터 받은 감동이 너무도 컸기 때문입니다.
노랫말로 만들기 위하여, 먼저 그 시를 좀 더 간략하게 다듬어야 했습니다. 작곡에 대한 기초 교육에 전혀 무지하였던 저였기에 무척 애를 써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 곡의 멜로디가 생각납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같은 시에 곡을 붙인 명곡이 몇 개 있더군요. 감히 왕초보가, 명시를 동요 수준으로 전락시켰다는 생각이 들어 창피할 뿐입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제게 감동을 준 ‘첫 시’로 인해 평생 시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친구 시인
신학교 친구 중에 시인이 있습니다. 조직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훌륭한 석학입니다. 미국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하는 영어로 된 신학서적을 몇 권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글을 잘 쓴다고 생각을 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서정시를 답은 시집이었습니다. 물론 우편으로 출판된 시집을 받은 후, 하나씩 음미하며 단숨에 읽었습니다. 대부분 주제는 자연입니다. 하늘, 구름, 나무, 숲, 꽃, , 풀, 달, 별 등을 바라보며 얻은 감흥이 함축된 시어에 담겨져 섬세하게 표현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며 지낼 때에는, 학문의 깊이와 냉철한 지성을 지닌 친구였다고 생각하였지만, 시집을 출판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얼마 후 나름의 답을 얻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시골 출신이라고 자주 언급하였습니다. 태어난 후 장성하면서 줄곧 자연과 접하면서 살아온 경험으로 인해 남다른 정서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 수많은 시를 접해 보았지만, 이 친구가 쓴 시들은 뭔가 달랐습니다. 쉽게 시에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동참하는 듯 하였습니다.
큰 위로
올해 2월 4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천국으로 부르셨습니다. 12월을 맞아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볼 때, 제게 일어났던 여러 일들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도 어머니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에 빠져있을 때, 그 친구가 시를 하나 보내주었습니다. 어머니를 추모하며 적은 시였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그 시를 그 지방 ‘중앙일보’와 전국지 ‘미주크리스찬신문’에 기재하여 사진을 찍어 보내온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은 한결 같겠지만, 한평생 사랑과 정성으로 희생하며 걸어오신 길을 마감하고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으며, 남겨놓으신 수고와 눈물의 열매가 영원할 것이란 확신을 주는 그 친구의 시를 읽으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가 지닌 파워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시
지금까지 여러 편의 시를 적어보았습니다. 너무 졸작이라 남들과 나눌 수 없었습니다. 간혹 작곡을 하기 위해 가사를 적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늦가을, 그 시인 친구가 제게 서정시 몇 편을 사진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가을 하늘, 갈대, 나무 가지 등이었습니다. 올 초부터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정신없이 달려오던 제게,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자연과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4계절 중,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을까? 겨울이 지나면, 지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영원한 봄을 누릴 것인데, 나는 과연 언젠가 찾아올 인생의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감하게 여러 느낌을 갖추려 시를 한편 적어 보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보내면서,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냐고 질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많이 쑥스럽지만 외부에 공개하는 ‘첫 시’입니다. 제목은, ‘가을이 떠나려 한다’입니다.
가을이 떠나려 한다
코스모스 사이로
하늬바람 타고 오더니
가을이 떠나려 한다.
슬그머니 가려한다.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서서
울며불며 애원한다
제발 자리를 지켜달라고
가을이 지나야
시인의 계절이 다가오지만
칼바람을 떠나보낼
영원한 봄의 기운을 의식해서인가
인생의 4계절
앙상한 겨울나무의 숙명
눈 옷 입은 파리한 모습
마지막 추억이 될까나
가을이 떠나간다.
제법 큰 발걸음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나
어깨가 너무 쳐져있다
가을이 떠나갔다
미로에 들어섰다
12월입니다. 올해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달려가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해를 소망합니다. 인생의 4계절을 생각해 봅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면 영원한 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날은 반드시 옵니다. 누구에게나 옵니다. 현재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