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6:17-35
<18) (이삭이)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 새 구역이 배정되었습니다. 구역을 2,3번 같이 했던 지체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말씀의 우물들을 나름 열심히 팠을 것이나 이번에 다시 만나 어느새 메워진 부족함과 연약함을 보며 새롭게 우물을 파고 가야합니다. 그러나 우물 파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19)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종들과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 힘껏 우물을 팠는데 다툼이 생기니 다른 우물 파는 이삭입니다.
삶으로 말씀을 나누는 목장. 그런데 다시 만난 친함과 다정함 때문인지 직설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다연장으로. 어제 제 기도제목 ‘비판의 마음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을 주소서’ 였습니다.
<22)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 제가 비판과 혈기의 우물이 아니라 긍휼의 우물을 파게 되는 수준이 되어야 저의 지경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23)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 이제 물도 생기고 다툼도 없는 르호봇의 번성을 뒤로 하고 브엘세바로 올라갔다 한다. 브엘세바?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불렀으며’(창21:33)
어릴 때 보았던 아버지의 삶의 예배. 고생하고 수고한 것 다 양보하고 이제는 르호봇에서됐다 할만 한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의 자리로 올라간 것 아닐까합니다.
@ 기도 : 비판과 혈기의 우물이 아니라 긍휼의 우물을 파도록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