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대학에 진학한 뒤로 아내가 무척 힘들어 했습 니다. 물론 처음은 아닙니다. 첫째를 기숙사에 데려다놓 고 한동안 ‘빈자리’에 적응하느라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 니다. “지금 뭘 할까?” “보고 싶다!” “잘 지낼까?” 본인도 모르게 흘러나왔던 말들입니다. 그리움과 걱정의 줄에 묶여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지요. 사실 저도 아내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 히 첫째가 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유일한 위 로가 되었던 것은, 공부를 위해 부모의 품을 떠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니 도리어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대화를 나눈 후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과 같이, 성장한 딸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며 위로 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빈자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던 것은, 뱃속부터 키워온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마음 깊이 숨어있는 ‘모성애’의 샘은 언제나 마를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를 기숙사에 보낸 후, 아내의 반응을 자세히 지켜 보았습니다. 첫 경험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빈자리’ 에 대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이상 해요. 기도하기 시작하면 애들 기도가 먼저 나와요.” 첫 딸을 보낸 후 아내가 반복했던 말입니다. 이번에도 그 ‘빈 자리’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느끼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빈자리
막내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 때문이었습니 다. 일상생활을 함께 지내며 온갖 추억을 나누며 정을 쌓 아온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자립하면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 속에서 겪는 일종의 심리현상을 가리킵니다. ‘빈 둥 지’라 함은, 품안에 키웠던 새를 하늘에 날려 보낸 후 빈 둥지를 지키는 어미 새의 공허한 마음을 빗대어 설명하 려 한 것입니다. 이미 ‘빈 둥지’는 첫째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함께 둥지 안에 남아있는 아이들 때문에 견딜만했었습니 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막내마저 둥지를 날라 가 버리면, ‘완전히 빈자리’를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어떻게 이 상황을 준비할 것인지 나름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교 재학시절부터 ‘빈 둥지 증후군’과 이에 대처하 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세 청소년 사역을 하면 서, 힘들어하시던 부모님들과의 원활한 상담을 위해 전 문 서적을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 집의 ‘빈 둥지’는 상상 하지도 못했던 시절부터 익숙해져 있는 이론을 ‘완전히 빈자리’라는 실제 상황에 적용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채워지지 않을 자리
결국 ‘빈 둥지’가 되었습니다. 막내가 날아가 버린 것 입니다. 기숙사에 내려다 주고 오는 순간부터, ‘완전히 빈자리’를 지키는 아내의 모습이 매우 애처로웠습니다. 그나마 필라 도심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으니 언제나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다시는 ‘채워지지 않 을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내에게 이전과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냐고 물었습니다. 더 잘 해주지 못한 아쉬움이라고 답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정말 수고 많이 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 네주었습니다. 사실이구요. 저도 ‘완전히 빈자리’를 바라보면서, 이미 날라 간 세 마리의 새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죄책감으로 잠시 힘들어 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생긴 후,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이 시간이 되는 주 말에 더욱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목회자로서, “바쁜 아빠, 나쁜 아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 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채워지지 않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세 마리의 새들은 나름 성숙하게 저 를 대해주었습니다. 목회적 상황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 였던 것도 있었지만, 목회자 자녀로서 나름 스스로 터득 한 무엇인가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간혹 함께 하지 못하는 섭섭한 일이 있어도 꾹꾹 참으며 이해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저를 위로하기도 하였습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 니다
빈자리를 채우며
어느 날, 멀리 날라 간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아 쉬움을 달래고 있던 제 자신을 스스로 책망하게 되었습 니다. 저도 아버지께서 목회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응원 해 드렸지만, 항상 제 마음 한 구석에는 섭섭하고 쓰라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 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바로 “바쁜 아빠, 나쁜 아빠” 였습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옛말이 결코 틀린 것이 아 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아버님께서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셨듯이, 저도 아 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바쁜 아빠, 나쁜 아빠” 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우리 아이들은 참 대견하다는 식으로 무마시키려 했던 것이지 요. 그 원인이 목회 현장이란 특수한 상황인지, 아니면 제 개인의 문제인지 아직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저희 집에 새 가족이 생겼습니다. 베타(Betta)라는 물고 기입니다. 빈자리가 너무 쓸쓸해서 강아지를 한 마리 키 우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고 하니,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 이들이 저희에게 선물했습니다. 베타는 열대어처럼 지느 러미가 화려하여 ‘동양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민물고 기입니다. 아름다움과 대조적으로 사나워서 작은 어항에 혼자 살아야 합니다. 할 일이 생겼습니다. 온도와 산도를 맞추어주어야 합 니다. 필터를 갈아주고 시간에 맞추어 불을 켭니다. 무엇 보다 시간에 맞추어 먹이를 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베타 는 주인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나갔다 오면 바쁘게 헤 엄을 치면서 턱 아래 있는 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듭니다. 빈자리를 채운 새 식구 베타의 수명은 2년입니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럴 의도 도 없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베타의 입장에 서서 챙겨주고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을 자리’를 남기고 날아 간 세 마리의 새들이, 자기의 둥지를 치는 새로운 환경을 생각해 봅니다. 이렇다 하고 표현을 하지 않아도, 베타처 럼 챙겨주어야 할 손이 필요하겠지요. 어떤 방법이든지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기도로 함께 할 것을 다짐 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 둥지들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 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녀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 해 돌보시는 “좋은 아빠”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