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담임목사님 칼럼, 웹매거진

호흡의 추억

코끝의 추억

고향은 항상 그리운 곳입니다. 많은 추억 때문이겠지요. 이 지면을 통해 자주 나눈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고향은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근래에 고향을 찾아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옛 시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아파트촌과 넓은 길로 대치된 모습을 대하셨을 것입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고향이 더욱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과거를 냄새로 기억합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추억이 향기로 뇌에 저장되는 것이 보통 일이라고 합니다. 전문 용어로 ‘프루스트 현상’ 이라고 하구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식당 옆자리 손님이 시킨 청국장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과거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된장찌개가 기억납니다. 이때 잠시 사랑이 많으셨던 어머니의 손길과 눈길을 잠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치매가 걸리지 않는 한, 고향에서 경험한 다양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황사현상

제가 한국으로 나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안 주로 수원에서 살았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수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우 평범한 시골 동네였습니다. 참 오랜만에 찾은 수원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저를 맞았습니다. 특히 전 세계로 약진하는 삼성 전자 본사가 그 곳에 자리를 잡고, 나아가서 광교 신도시가 들어서는 등 탈바꿈이 연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원에서 거주하는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황사현상이었습니다. 공기에 모레 가루가 섞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 이주하기 전부터 자동차 공해가 심각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위 분들로부터 운전을 할 때 반드시 자동차 유리창을 내리고, 가급적이면 항상 마스크를 쓰라는 권유도 받았습니다. 처음 도착한 이후 탁한 공기를 견디느라 얼마동안 참 힘들었습니다. 제가 공기에 민감해서인지, 간혹 콧물이 흐르고 재치기를 거듭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탁한 공기에도 아랑곳없이 창문을 열고 운전하고 있던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많이 놀랐습니다. 그 당시 일 년에도 수차례 미국을 오갔기 때문에, 뉴욕 공항에 내리자마자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감사하곤 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도로를 운전하면서 탁한 공기로 인해 잠시 경각심은 가졌지만, 전과 달리 빠른 시간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사현상은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이었습니다. 목과 눈이 따갑고, 잠시라도 거주하던 아파트 창문을 열어놓으면 온 집안이 모레먼지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해야 했습니다. 바로 앞은 잘 보였지만, 점점 멀리 볼수록 황사에 가려져 뿌연 형체로 보였습니다. 아주 먼 곳은 마치 안개에 가린 듯 보이질 않았지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저 멀리에 있는 사람은 제가 뿌연 황사에 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모래가루가 섞인 공기를 호흡하는 저로서는 그런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황사현상 중에 비가 내리고 난 뒤, 자동차를 보면 황사현상의 위험성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 위에 모레를 뿌려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제가 호흡하던 공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려 주고도 남았습니다.

미세먼지

얼마 전 친구와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우리나라가 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미세먼지는 그 크기가 머리카락 두께의 1/5입니다. 미세라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입자가 공기에 섞여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미세한 먼지의 성분이 어떤 것이냐는 것입니다. 주로 황산염, 질산염, 금속, 매연, 타이어고무 등입니다.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면, 자연히 건강에 적신호가 생기게 됩니다. 미세먼지가 여과 없이 기관지를 거쳐 폐에 흡착됩니다. 호흡기 질환은 물론, 심장질환과 뇌졸중, 나아가서는 장기와 신경계를 손상시킨다고 합니다. 매우 치명적인 현상이지요.

관심을 가지고 미세먼지로 덥힌 도시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얀색 필터에 미세먼지를 1시간가량 여과시킨 뒤,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미세먼지를 계속 들이마시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인구 중 6명중 1명이 환경오염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의 원인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전적으로 중국에서 날라 온 오염물질 때문이라는 소리와, 이와 반면에 한국 정부의 환경 대책이 미흡 때문이라는 소리가 서로 날카롭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희생하는 것은 국민들이지요. 특히 “우리의 소원은 편안하게 숨을 쉬는 것입니다”라는 어른이 적은 푯말을 든 채 서 있는, 미세먼지에 가장 취약한 어린아이들의 건강이지요.

마지막 날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공기를 마음 놓고 들이킬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 더 이상 청정지역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이 세상이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북극에 쌓여있던 눈이 녹고, 이에 따라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최고 기온이 47도 (116도)를 넘었습니다. 유럽의 일부지역이 열대기후로 변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성경에서 가르치는 마지막 날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도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들은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이 세상에 측적되어 있는 인간의 찬란한 영광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유일한 영광이신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서 거듭난 영혼들은 천국에서 즐겁게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경험한 다양한 냄새에 대한 추억들은 사라지고,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호흡할 것입니다.

우리의 산 소망은 오직 ‘십자가 복음’ 밖에 없음을 새롭게 확인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토록 한없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