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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행복

감사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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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달의 주제를 아세요?“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의 특수성을 강조하여 이름을 붙이는 교회가 무척 많습니다. 예를 들면, 1월을 ‘출발의 달’, 9월을 ‘독서의 달’로 부릅니다. 한 달 동안 교회 전체가 그 달의 주제에 집중하여 홍보를 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주보는 물론, 교회 여러 곳에 이와 관계된 포스터를 붙여놓습니다.

대부분 11월을 ‘감사의 달’로 지킵니다. 현재 월별 주제를 특별히 정해놓지 않은 우리 교회도, 11월을 맞으면 자연스럽게 ‘감사’에 집중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의 최고 절기인 추수 감사절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고국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의 신앙의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가 지닌 독특한 국가적 전통이라 생각됩니다. 그 뿐 아니라, 가을이란 계절이 지닌 독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려서 농촌에서 자라나면서 느꼈던 가을은, ‘풍요로움’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른 봄부터 논과 밭으로 나가 땀을 흘리며 집중하던 농부들은 한 마음으로 가을을 기다렸지요. 아직 이렇다 할 농기구나 약품이 공급되지 않아, 매사를 몸으로 때워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을의 수확을 마음에 품고 인내할 수 있었지요.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이겨낸 힘도, 가뭄과 홍수로 인한 재해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었지요.

시골에 살던 분들은 거의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공부 또는 직장으로 인해 도시로 떠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농부의 일을 하였지요. 논에 모를 심을 때에는 아예 너와 나의 밭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도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동네 사람들의 논에 모를 함께 심었지요.

즐거움

11월이 되면, 대부분의 농부들은 오랜 세월 수고하여 얻은 열매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지요. 늦가을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졌던 동네잔치를 기억합니다. 일단 오색찬란한 옷을 입은 농악대가 흥겨운 가락을 연주하였지요. 음악에 맞추어 어르신들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이어서 초등학교 학생들의 청백전 운동회가 벌어졌는데, 기마전, 제기차기, 그리고 달리기 등 어른들을 위한 게임도 있었지요. 맨 마지막에는 항상 줄다리기 시합이 있었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을의 풍요함이 가져다 준 즐거움을 함께 나누길 위해 함께 모여,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운동장에 걸려있던 만국기, 달리기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 재미있게 3.3.7 박수 응원을 이끌었던 아저씨… 이 모든 것이 아직 기억에 생생합니다.

지금은 봄부터 시작하여 가을에 마치는 농사 주기와 전혀 상관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을 과일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습니다. 봄나물을 한 겨울에도 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 풍요롭습니다. 누군가가 흘린 땀의 대가로 인해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한번은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땅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으로 인해 크게 기뻐하며 감사할 것임에 틀림이 없는데, 정작 그들의 수고로 인해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요? 현재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행복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기 원합니다. 행복이란 마음이 만족과 즐거움으로 채워져 있는 좋은 감정을 의미하지요. 두려움이나 걱정이 주는 불안한 마음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지요. 오래전 한 수필가의 글에서, 감사란 마음에 행복을 담아두는 그릇이란 표현에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감사와 행복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지요. 즉, 감사가 없는 행복 또는 행복감이 없는 감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풍요한 삶을 누리면서 감사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이 말씀은, 감사하지 않는다면 자질 상 성도로서 문제가 있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 듯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마지막이 되면 나타나는 현상을 열거하면서,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감사하지 아니하며…(디모데후서 3장 2절)”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무 급히 결론을 내리는 것 같지만 위의 말씀에 근거하면, 풍요한 삶을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이 아닙니다. 행복감을 상실한 것은, 어두운 이 시대의 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재림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행복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까?

진정한 감사

전문가들은 행복감을 얻기 위해 감사를 ‘연습’하라고 합니다. 의학적인 증명을 대면서, 뇌를 바꾸면 마음이 변한다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복감을 누릴 수 있을까요?

감사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풍요와 핍절이 감사의 기준이 된다면, 우리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은 ‘진정한 감사’가 보장합니다. 없던 것을 얻고 누리며 감사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것들 – 생명, 구원, 가정, 신앙, 성경, 건강, 성령, 교회, 천국… – 이미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눈을 뜨는 순간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진정한 감사’를 낳게 합니다.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 모든 일이 감사의 조건으로 변합니다. 11월 ‘감사의 달’에, 주 안에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