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시간 – 이유가 있다!
가속도
“세월이 참 빠릅니다. 벌써 12월이 되었습니다.” 연말이 되어 서로 인사를 나눌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입니다. 그렇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벌써 올해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지?” “한 해를 어떻게 보냈지?”자연스레 잠시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가 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시간이 지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30대에는 30마일로, 50대에는 50마일로, 70대에는 70마일로…” 라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과거나 현재나 하루 24시간과 1년 365일이 동일하게 주어졌는데, 나이가 먹을수록 그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은 그 나이가 되어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에 비해서 그 속도가 아직 느리다고 해도, 저도 제가 젊었을 때에 비해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가속도가 붙어 과속으로 달리는 듯 합니다.
어리고 젊은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왜 이렇게 더디다고 불평하지요. 어린 아이들은 “When I grow up…” 이란 말을 자주합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이란 말을 할 때 그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과거에 경험했으니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합니다. 제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 시간을 참아내지 못하고, 어른들이 하는 일들을 흉내 내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는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젊은이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시간이 느리다고 느끼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때문에 시간이 빨리 지난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책방에 들렀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인간의 뇌에 대한 설명이 담긴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문인들이 나누는 지식을 통해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이가 들면 실제로 어린 사람보다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가속도가 붙어 달려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느려집니다. 먹은 음식을 소화하는 시간, 피곤에서 회복되는 시간, 위급한 상황에 대한 대처하는 시간, 몸을 활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 모든 것이 느려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여러 감각들을 느끼는 시간조차 느려진다고 합니다. 현재 세상은 과거와 같은 속도로 돌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는 나의 감각이 느려지게 되니, 자연적으로 세상이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제한 속도인 55마일로 달리면, 다른 차들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운전 속도를 55마일에서 45마일로 줄이면, 갑자기 55마일로 달리는 차들이 전에 비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옆에 있는 다른 차가 아닙니다. 내가 느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다른 차들이 전과 달리 빨리 달린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뇌의 신비
우리의 뇌는 무엇을 기억할까요? 우리가 삶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기대하는 것인 일반적인 추측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과거의 모든 것을 공평하게 전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뇌는 결코 과거라는 시간에 경험한 모든 것을 저장한 창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추측은,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물건을 저장해 둔 창고에 들어가 필요한 물건을 집어오듯,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과거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마치 몸이 약해져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듯 기억력이 쇠퇴해진 탓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뇌는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합니다. 우리의 뇌는 스스로 알아서 기억 창고에 넣을 것과 뺄 것을 이미 결정하고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체에 대해 알수록 신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특히 저장 창고로서의 뇌의 기능은 우리를 많이 놀라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주로 어떤 것들을 기억 창고에 저장할까요? 주로 처음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생겨나는 의미 없는 일들은 기억 창고에 저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몇 달 전 고급 식당에 초대 받아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는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불과 몇 일전 집에서 식사할 때 무엇을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이냐는 것이 기억의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남은 시간
위급한 상황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에게 우리는 이런 인사를 합니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했기 때문에 두고두고 잊지 않고 그 일을 남에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마운 일이 기억 창고에 제대로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게도 있습니다. 과수원에서 바라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 처음 미국에 도착해서 먹은 피자, 신혼여행, 첫 아이를 품에 안아본 순간, 신학교에서 첫 수업, 아버님의 마지막 평안한 모습… 이 외에도 평생 기억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가속도가 붙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답이 생각보다 단순하였습니다. 의미 있는 일들,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좋은 추억 거리를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에베소서 5장 16절)”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수록, 거룩한 부담을 안고 기억 창고에 좋은 것들로 꽉 채워놓으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