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시름을 날린 노래
1998년 7월, IMF의 여파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국민들에게 희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현재 ‘골프 여제’로 추앙을 받고 있는 박세리 선수가 LPGA 투어 US Open 경기에서 우승한 것입니다. 그 당시 20살밖에 불과한 어린 선수가 세계적인 대회에서 연장까지 가는 숨 막히는 접전을 펼친 결과였습니다. 그녀의 우승이 감동스러웠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지막 18홀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을 골라 입을 수 있는 운동경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성 골프 선수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무척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그 날 박세리 선수가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은 다름 아닌 양말을 벗은 그녀의 발이었습니다. 골프공이 연못으로 빠지는 상황이 연출되자, 거침없이 양말을 벗었습니다. 연못에 들어갔습니다. 집중해서 친 공이 잘 맞았고, 이어서 우승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온 국민들을 감동시킨 것은, 검은 색 다리와 대조를 이룬 흰색 발이었습니다. 우승하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은 IMF 상황을 이겨나가는데 큰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전환점을 만든 것은, ‘노력하자, 노력하면 된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녀가 양말을 벗고 물속에서 경기를 하는 모습을 담은 공익광고가 제작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여기에 삽입된 감동적인 배경음악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는 국민가요 ‘상록수’였습니다.
‘상록수’는 노동운동을 하던 김민기씨가 만든 곡으로, 발매와 함께 금지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금지곡에서 해제가 된 후로 공식모임에서 자주 불려진 노래였습니다. 이전에는 민주화 운동과 관계된 곡으로 알려졌지만, ‘상록수’는 박세리 이후로는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로 승화된 것입니다.
4계절과 상록수
상록수의 1절 가사를 소개합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사계절 변함없이 녹색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잘 그려냈습니다. 한결같다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항상 같은 색과 모습을 지닌 상록수는 우리에게 지루한 감을 줄 수 있습니다.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계절과 달리 한결같은 모습을 대조할 때에 상록수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동부에서도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우리를 위해 맑은 공기를 힘차게 뿜어내고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여름 내내 자태를 자랑하는 무성한 나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선사합니다. 물론 가을의 화려한 단풍을 빼놓을 수 없지요.
얼마 전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상록수’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풍을 기대하면서 바라보았던 나무의 모습이 크게 변하였습니다. 그 무성하고 화려하던 잎이 거의 떨어졌습니다. 앙상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검은 색 가지 사이로 하늘이 훤히 드러났습니다. 이윽고 바로 그 옆에 서 있는 몇 그루의 상록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길입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는 동안 이 상록수는 제 눈에 들어온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습니다. 다른 나무의 무성함이나 화려함 때문에 일부러 무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눈이 가지 않은 것입니다.
겨울이 되니 상록수의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오면서도 그 자리에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자신을 더 드러내려고 노력하거나 어떤 변화를 준 것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상록수로서의 진가를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상록수는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이번 겨울에도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여유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녹색 나무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물론 봄이 되어 주위에 서있던 앙상한 가지들에서 새순이 돋기 시작하고 그 뒤에 화려한 옷을 입은 뒤에도, 상록수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인내하면서 다시 겨울을 기다릴 것입니다.
상록 신앙
늘 푸르다는 것은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항상 남들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 환경에 의해 흔들리거나 따라가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바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록 신앙은 이런 뚝심을 요구합니다.
‘상록 신앙’은 자신을 드러내려하지 않습니다. 어떤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인내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계절이 되어서, 그렇게 화려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종말 전에는, 그 신앙이 남들에게 전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상록 신앙’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상록수의 대명사인 소나무로 만듭니다. 가족들과 함께 ‘상록수’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연말입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면서 잘 마무리하시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