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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우선순위

시간의 굴레

우리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이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이미 정해진 시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허사입니다. 소중한 시간이 허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

지난 주, 오랜만에 휴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여름 내내 교회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쉴 틈이 없었습니다. 주말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집회 인도 일정이 잡혀 있기에 기도원에서 지내면서 간간이 설교 준비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례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일정을 당겨 귀가했습니다.

비록 짧았지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내기에, 시간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많이 지쳐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긴급한 일의 횡포

아주 오래전 소그룹 성경공부 시간에 읽었던 찰스 험멜 (Charles E. Hummel)의 소책자 ‘긴급한 일의 횡포(Tyranny of the Urgent)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시간 활용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담은 유익한 책입니다. 일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제 자신에 대하여 반성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긴급한 일 또는 긴급하다기 보다 자신이 선호하는 일에 집중하는 성향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시간 활용의 모범적인 예로 제시합니다. 사실 우리 주님은 항상 바쁜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시간의 굴레 안에서 무엇을 중요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을 지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목회 현장에는 긴급한 일이 적지 않게 생깁니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형편과 처지가 매우 다양합니다. 각자의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런 일들을 한번도 ‘긴급한 일의 횡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도들을 섬길 수 있다는 자체가 기쁨이요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혹 ‘긴급한 일의 횡포’로 인해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바쁜 목사는 나쁜 목사’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만일 바쁘다는 것이, 목회자에게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있다는 의미라면 결코 ‘나쁜 목사’라 할 수 없지요. 이와 반대로,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잡다한 일에 신경을 쓰거나 해결하기 위해 소중한 허비하고 있다면 당연히 ‘나쁜 목사’이구요. 현재 제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순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효과적 시간 활용의 핵심은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는데 있습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에 대한 순서를 제대로 정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할 일이 지나치게 많거나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면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중요시 여기셨을까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유지하기 위해 기도하는 일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선순위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자연스런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순위를 마음에 두고 있을 때,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의사 결정이 수월해 지는 것입니다.

23년 전, 막내를 출산 할 때 생긴 일입니다. 금요일 밤에 교회에서 청년부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는데, 친구 목사 사모님께서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뭐하고 계세요? 사모님 진통이 시작되었어요!” 빨리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갔습니다. 상황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사모를 차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금방이라도 출산할 것 같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렌즈데일에서 애빙턴까지 가는 길에 경찰을 만나, 호송을 부탁해서 빠른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급히 분만실로 이동했습니다. 몇 분 뒤에 새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정말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모의 맥박이나 혈압도 잴 여유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태어난 막내를 잠시 안아본 뒤에야, 병원 수속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문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였을까요? 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일

지난 주 밴쿠버 집회의 모든 일정이 주일 늦은 오후에 끝났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주하시는 작은 아버님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복음 송 ‘하나님의 은혜’ ‘축복하노라’ 등을 작사한 조은아사모의 부친이십니다. 작은 아버님은 저희 아버님과 많이 비슷하게 생기셨고, 어려서부터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신 분이십니다. 오래전 목회에서 은퇴를 하셨습니다.

어르신을 찾아뵙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조금 달랐습니다. 이번 봄에 목 주위에 큰 혹이 생기셨는데, 임파선 암으로 판정이 되어 온 가족과 친척이 함께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몸 상태가 좋아지셔서 약물치료를 받으셨는데, 불과 몇 주 전에 치료를 마치셨습니다.

뵙자마자 큰 절을 하고 가까이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머리가 하나도 없으셨습니다. 조금 마르셨지만 건강하게 보이셨습니다. 치료 결과가 좋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목사, 목회도 중요하지만, 몸과 마음도 중요해. 건강해야 목회도 가능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우선순위를 말씀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