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나이가…
해피 버스 데이
“Happy Birthday to you!” 생일잔치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끔 이렇게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합니다. “How old are you now?”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이제 당신은 몇 살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요. 원래 상대의 나이를 묻는 것은 큰 실례이지만, 잔치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저는 이 노래를, 제 30살 생일잔치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 당시 뉴저지의 한 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조촐한 생일잔치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식사 후, 생일 케이크를 앞에 놓고,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 개의 커다란 촛불은, 하나에 10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How old are you now?”를 장난 섞인 목소리로 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이미 경험을 했거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저 역시 그 당시 20대를 마감하고 30대로 넘어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과 기대감이 동시에 제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30대만 바라봐도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제가 바로 그들이 섰던 자리로 들어선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특히 유머 감각이 뛰어난 학생이 제게 건네준 카드의 내용이 저를 웃게 만들었지만, 속으로는 이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였습니다. 아주 간단했습니다. “You are now 30, and then down hill!” (30살이 되었지만, 이제 내리막 언덕이 시작된다.)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언덕을 내려가는 한 남자의 그림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30살로 접어드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지니고 있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그의 나이가 30세였습니다. 참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께서는 부르신 제자들을 훈련시키셨고 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사역하신 뒤, 33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 “청년 예수”라는 표현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지요.
젊은 날의 꿈
30세가 되던 해, 저는 신학교 졸업반이었습니다. 앞날에 대한 꿈과 계획으로 마음이 잔뜩 부풀어져 있을 때였지요. 그 당시 한국의 한 재벌 총수가 출판한 책의 제목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유행어가 되었는데,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 나누며 서로 격려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인들 사이에는 어르신을 높이는 전통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드신 분들을 대할 때에는, 항상 존경하고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당시, 이 귀한 전통이 한국 교회 안에 그대로 옮겨져서, 신학생들은 목사님들을 어른으로 모시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서는 교육전도사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제게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몸 깊이 베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30살이란 나이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지요. 이제 30살 이후 내게는 어떤 삶이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제 자신을 향해 스스로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환경의 기본적인 틀을 깨부숴야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각성하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젊다는 것은, 그 만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지요. 젊었을 때에는 돈을 지불하면서라도 고생을 경험하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이 무수하다는 것이지요. 인생의 쓴 맛과 실패로 잠시 울더라도, 이 모든 경험들이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데 큰 자산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젊음 자체가 지닌 가치는 무한한 것입니다.
젊은 날의 열매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와 달라진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생각, 건강, 친구, 환경, 외모, 취미, 관점,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젊은 날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따라, 중년과 노년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일찍 철이 들어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그릇을 크게 키우고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지요. 젊은 날 세속적인 맛에 취해서 방탕한 삶을 사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장래가 보장될 수 있겠습니까? 중년이 되기 시작하면서, 순서와 상관없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벌써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 몸을 어떻게 관리하였느냐가, 중년 이후의 건강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30살이 될 때 까지는 한참 걸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후 40을 지나 50살 생일을 맞을 때에는, 점점 엄청나게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이제 60을 바라보고 있다보니, 급행열차의 속도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앞으로 70, 80을 맞는 생일에는 어떤 느낌이 들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듯합니다.
급히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멈추어 봅니다. “아니, 벌써 내 나이가.. ” ‘젊은 날의 꿈’이 사라지면, 오직 ‘젊은 날에 대한 추억’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 아직도 다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열매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흘린 땀의 결과로 얻은 열매를 의지해야 할 때가 언젠가 반드시 찾아 올 것이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50살, 우리 교회
9월 16일로, 우리 교회가 50주년을 맞게 됩니다. 이민 초기에 세워진 이후, 지난 긴 세월동안 우리 교회는 이민 사회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민 역사의 변화 속에서, 50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 교회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니, 벌써 우리 나이가…” 젊은 날의 추억이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아무리 희미한 것이라도 아직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의 소중함을 재차 인식하게 됩니다. 50살 중년다운 성숙한 모습으로, 건강을 유지하는데 집중해야 하겠지요. “교회는 그의 몸이니.. ” (엡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