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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님!”

“아버지님!”
조진모 목사

여러 호칭
우리가 사용하는 호칭이 무척 많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가 다양하다는 것이지요. 호칭은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서로를 무엇이라 부르는지를 통해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여보” “엄마” “삼촌” “매형” 등의 호칭은 가족과 친척 관계에 사용됩니다. “선생님” “선배님”과 같이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담겨진 호칭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덕스럽지 못한 호칭이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사회생활의 반경이 넓어집니다. 따라서 사용하는 호칭이 다양해지구요. 호칭 사용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속한 사회의 성격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그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으며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가급적 편안하게 상대의 호칭을 부를 수 있는 대상이 많을수록 좋겠지요.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불러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겠지요. 현재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버이
한국에서는 5월을 ‘가족의 달’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아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주다가, 1922년에 첫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입니다. 1956년부터 ‘어머니 날’로 정하여 지키다가, 아버지를 포함시켜 부모님의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변경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지킨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생소하지만, 2007년부터 공식화된 법정 기념일입니다. 21일을 정한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두(2)사람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6월도 ‘가족의 달’ 포함시켜야 합니다. 매년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날’로 정하였기 때문입니다. 5월 첫째 주일을 ‘어버이날’로 지키는 한국과 달리,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정해놓았습니다.
한국으로 건너가 교수 사역을 하는 동안 저희 가족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에게는 이민생활이었고, 어린 나이에 이민의 길에 올랐던 아내에게는 또 다른 이민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의 이질적인 문화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 것처럼, 한국의 문화와 익숙해져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한국 생활이 힘들고어려웠지만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얻은 것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여러가지 호칭과 익숙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어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지칭하는 호칭이 ‘부모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5월 5일을 맞아, 한국 사람들은 ‘어린이날’을 지킨다며, 이런 날이 없는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좋은 나라라고 우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5월 8일에는, 이 날을 ‘어버이날’을 지켜야 할지 ‘어머니날’로 지켜야 할지 모르겠다며 신기해하기도 하였지요.

아버지님
어느 날 막내가 저를 향해 고개를 푹 숙여 절을 하면서, “아버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까지 “아빠”라는 호칭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매우 낯선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다시 물었지요. “스데반, 너 지금 뭐라 그랬니? 아빠가 잘못 들었다.” 조금 전과 같이 고개를 푹 숙여 절을 했습니다. 마치 사극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를 읊듯이 “아버지님!” 이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왜 이상한 호칭을 사용하는지 직접 물을 수 없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 중에 “아빠” 대신 “아버지”를 사용하는 아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 “형님” “기사님” 등과 같이, 상대를 높이 부를 때 호칭 뒤에 “님”을 붙여 사용한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아빠”가 “아버지님”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님”이란 호칭이 너무도 낯설었습니다. 한글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설명을 해주었지만, 나름 고집을 부리면서 계속 불렀습니다. 그때 스데반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아버지님’이란 말이 전혀 생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아빠를 높여 부르는 말‘로 이해하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과 함께 한국 문화 속에서 배운 새로운 단어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아빠
현재 저는 ‘아빠’라는 호칭과 익숙합니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 익숙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된 막내가 가끔 ‘아버지님’이라고 부릅니다. 과거를 생각하면서 장난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아이들 중에 하나가 저에게 “아버지!”라고 한다면, 매우 어색할 것 같습니다. 그냥 “아빠”란 단어가 주는 친숙함이 좋습니다.
한 가지 후회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에게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도,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뭔가 참기름을 한 사발 들이킨 것처럼 느끼하다고 생각했지요. 비록 시간이 지나 ‘아빠’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 호칭이 주는 친근감을 알고 있었지만, 바보처럼 저는 ‘아버지’에게 ‘아빠’라고 불러보질 못한 것입니다. 사실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언제나 친구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막내인 저를 항상 부드럽게 대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 그러나 저는 아버지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으로 대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무척 가깝게 대했지만, 그 분은 내가 존경하는 윗분이요 나는 그 분이 낳은 분이란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아버지’라는 호칭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설정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님’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요.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으신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에 살아 계십니다. 그 분을 그리워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가끔식 편안한 모습으로 제 꿈에 나타나십니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다시 나타나시면 ‘아빠’라고 불러보려고 합니다. 이미 익숙해진 ‘아빠’라는 호칭의 친근감이 있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있습니다. 단지 아버지를 향해 “아빠!”라고 부를 때의 아버지께서 어떻게 반응하실 지 무척 궁금할 뿐입니다.
아버지에게 ‘아빠!“라고 거침없이 부르기 위해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주로 ’아버지‘로 불렀는데, 이제부터 ’아빠‘라고 불러보렵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시간이 지나면서 어색함이 사라지겠지요. 앞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 방긋 웃으며 불러보렵니다. “아빠!”